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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울을 가진 스타일리스트 안소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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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임해영
  • 등록일 : 2015-06-06
  • 조회수 :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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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소웅 - Motive


    열기로 사람잡는 무더운 계절이 이제 거의 다 지났다. 그 힘들었던 연례행사, 푹푹 찌는 열대야에서 해마다 더위에 지쳐 초죽음이 되는 짓은 적어도 이제 일년 간 안녕이다. 지났으니 하는 말이지만 도대체 무엇때문에 이렇게 더워졌을까. 프레온 가스로 인한 대기 오염? 담배 연기나 자동차 배기가스로 인한 지구온난화? 글쎄.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내 생각은 살짝 다르다. 이상기후를 부추기며 세상을 사막으로 만들어가는 범인은 한낱 헤어스프레이나 에어컨 냉매따위일 리가 없다.

    일분 일초가 아쉬울 정도로 건조해지는 사회 속에서 사람들의 인성도 발맞추어 메말라가고, 동반자 대신 경쟁자만 존재하는 이 사회.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미칠 듯이 폭주하는 공허한 정열을 시크하다 착각하며 동경해 대고, 늙은이는 늙은이대로 무언가를 개선하려 들기보다는 그 안에서 일신의 안전을 도모하고자 낙오되지 않으려 애쓰는 곳이 되었다. 작열하는 낮의 태양 속에서 드러난 우리의 모습은 두려우리만큼 앙상하고 눈부신 간판 불빛에 바라보는 상대의 모습은 경박스러우리만큼 뜨겁다. 비참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게 우리의 자화상인걸. 그렇게 유럽과 미국에서 시작된 인간 사회의 이러한 사막화와 건조화 현상이 바다 건너 우리에게까지 다가왔을 때, 그것을 피하지 않고 거기에 걸맞는 스타일로 표현해낸 스타일리스트가 있다. 안소웅이다.



    안소웅 - Motive



    종종 나는 그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을 때 특정 스타일이 의미없다는 것을 강조하곤 했지만, 그 스타일이 뚜렷한 사회성을 가지면서 작가 개인의 욕망과 합치할 때에는 그걸 도외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안소웅의 그림 스타일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안소웅 - 뉴발란스 지면광고 시안, motive



    그의 스타일은 한눈에 보기에도 우리의 것이 아니다. 하긴, 우리의 것조차 이젠 희미하다고 말할 수 있으니 우리 것이 아니라기보다는 차라리 특이하다 말할 수 있겠다. 자조적인 말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예술이나 문화란 부단히도 얽히고설키면서 조금이라도 뒤쳐진 상대를 흡수하여 변색시키다가 사멸시키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해방 이후 발달하나 싶었던 우리의 대중적인 그림체는 마징가제트를 앞세운 왜색 애니메이션 그림체에 짓눌리다가 사라졌다. 일러스트레이션이 가장 대중적인 시각전달매체 가운데 하나라면 그만큼 일반적인 그림체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 노릇이고, 그런 과정에서 아메리칸 스타일의 그림체를 가진 작가, 포트폴리오 제작에 충실했던 성실한 작가 안소웅이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필연이었다.



    NB-Men 스포츠 일러스트 - 안소웅



    엑스맨이나 스파이더맨 류의 히어로 만화로 대표되는 아메리칸 코믹스의 스타일은 우리에게 익숙한 일본 애니메이션 스타일과는 다른 존재다. 태생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은 2차대전 이후의 폐허 속에서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어 현실 도피를 시키려는 다분히 인공적이고도 불순한(?) 의도로 개발된 그림체라고 할 수 있는 반면 서구의 만화나 코믹스는 언제나 현실에 기반을 두면서 그것을 직설적으로, 혹은 은유를 써서 풍자하기 위하여 자생해 온 존재에 가깝다.

    이러한 생성 목적의 차이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림체의 스타일이 가지는 특성을 대변하는데, 일본의 망가나 애니메이션 풍으로 그려낸 그림들이 다분히 환상과 현실을 혼돈시키면서 현실도피적인 몽환, 곧 또다른 세계를 공상시키는데 반하여 서구의 코믹스는 현실을 반추시키면서 환상을 환상으로 각인시켜놓는, 다시 말하여 현실 속의 환상을 지향하게 되는 것이다. 안소웅의 코믹스 풍 일러스트 스타일 역시 이러한 스타일의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었으며, 필연적으로 현실 속의 판타지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안소웅 - motive



    현실 속의 판타지라는 말은 대단히 강력한 말로서, 다분히 공격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현실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일 수록 누구도 그것을 정면으로 반박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거칠고 메마른 사회의 쓴 맛을 볼대로 본 나머지 그와 동조하는 사람들이나, 혹은 자신만의 세계관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대개 누구나 그 판타지 속에 살아가는 듯한 공감을 강요당하기 쉽다. 엑스맨 코믹스처럼 안소웅의 그림에 환호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부류의 사람들이고, 그가 그림을 통해 위안해 주는 사람들은 바로 이 대목의 계층들이며, 콕 집어 말하자면 여성층보다는 남성층에 어필된다. 그런데 IT가 발달했던 대한민국에서는 이미 이러한 사람들이 자생적인 문화를 발생시키고 있었다.


    *


    사회의 번영과 정열 뒤에는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 있다. 바로 낙오자들이다. 그들이 따로 모여 소위 ‘잉여문화’라는 것을 형성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일명 ‘병맛(병신맛)웹툰’이나, 무차별적인 까대기 문화가 그것을 대변한다. 그들은 스스로가 사회의 하류계층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뿐만 아니라 언제부터인가 그것을 벼슬처럼 여기기 시작하더니 병신력, 혹은 잉여력이라는 병맛나는 단어를 조합하여 여기저기 써대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하나의 언더그라운드 문화이기에 별 큰 탈이 없다. 정작 그들이 문제화되고 있는 이유는 그들이 이제 누군가 튀어나오는 사람이 눈에 들어올 경우 신상을 털든 악플을 달아 비웃어대든, 어떻게 해서든 자신들의 하류 계층에 강제로 합류시킨다는 점이다.

    인터넷에서 익명성을 방패삼아 주로 활동하는 이 사람들이 실제적인 사회의 하류계층이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지만 흥미있는 것은 바로 이 전 지점. 이들의 특징은 대체적으로 공격성, 강제적인 공감 강요, 경박스러움과 ‘별 것 아닌 것들‘ 속에 감추어진 염세적이면서도 날카로운 논조로 요약할 수 있다. 안소웅의 공격적인 작품 세계, 그 반박이 어려운 데다가 좋든 싫든 이상하게 끌리는 현실 기반의 공격적인 판타지의 세계는 이 지점에서 잉여들의 언더그라운드 문화와 교차한다. 안소웅의 스타일은 스트레스를 강요받으며 살아가는 이들의 억눌린 카타르시스를 최대한 고상하게,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폭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안소웅 - 키엘 슈퍼 베리 데미지 프로텍팅 프로텍팅 토닝 미스트, motive



    모 대형 커뮤니티의 햏자나 잉여인간들, 찌질이, 혹은 언더그라운드의 히키코모리(방콕의 룸펜인생)라고 해서 존중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오만이다. 예술이 삶 그 자체라면 그들의 발상이나 생활방식이 아무리 찌질하고 저열하다 해도 반드시 하나 이상의 예술성을 가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해석되어야 하고, 그에 걸맞는 논리가 분명해야 한다는 예술의 전제조건을 생각할 때나 혹은 전시공간과 관객과 시장이 있어야만 생명을 가지고 살아나갈 수 있다는 예술의 존립요소를 고려할 때 잉여들의 문화는 이미 자생을 보장받을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을 전부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술이란 단지 인간의 고상함을 드러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좀 자존심이 상하는 말이겠지만 어쩔 수 없다. 예술은 문화의 근친이며, 결코 고상한 존재가 아니다. 절대다수의 예술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비추어주는 삶의 거울일 뿐이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 희망을 잃은(Hopeless ), 1963


    설중매 스파클링 - 안소웅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저 팝아트 작품은 리히텐슈타인 본인이 직접 그린 것이 아니다. 그는 타블로이드 일간지에서 뜯어와 복제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모든 재질을 대체할 수 있는 20세기의 플라스틱과도 같은 느낌을 가졌다는 공통점에서는 그와 안소웅의 작품 스타일은 같은 선상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엔 큰 차이가 있다. 리히텐슈타인이 현대 문화의 가장 일반적인 이미지를 차용하여 절망과 비탄을 이야기하면서 더 이상의 소통 가능성을 닫아 작품을 완결해 버린 반면, 디자인적 감각을 동원한 안소웅은 밑색이 깔리지 않은 색채의 경박함을 텍스트의 삽입 가능성으로 바꾼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만들어 또다른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도구로 바꾸었다는 점이 그러하다. 비슷한 스타일을 작품세계의 일환으로 이용한 두 사람은 이 부분에서 그 목적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리히텐슈타인은 이러한 코믹스 스타일의 그림체를 이용하여 사회의 절박함을 일방적으로 선포했던 반면, 안소웅은 이 스타일을 이용하여 무언가 다른 것, 이를테면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으로 얻을 수 있는 다른 것을 노리고 있다는 점이다.



    안소웅 - 드로잉



    물론 안소웅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우리는 점장이가 아니니 정확하게 짐작할 수 없다. 다만 세상을 움직여보고 싶다는 그는 그의 프로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는 패기만큼이나 야심만만하며, 세상 속에 자신을 집어던지는데 있어 전혀 거리낌이 없는 젊은 사람일 것이고 추측할 뿐이다. 그는 공격적이면서도 차별적인, 그리고 숙련된 그림체를 무기삼아 끊임없이 무언가를 달성하려 들며, 다분히 현대적이면서도 어딘가 마초적인 열의의 분출로 목소리를 높이려 들고 있다. 아직 그가 세상에 대고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는 애매모호하다. 그가 대변하는 우리의 자화상이 너무나도 공감이 잘 되어 아플 지경이기에 그러할 것인지, 아니면 그 자신조차 아직 스스로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고 있는 것인지 나타내지 않고 있기에 그러한 것인지.

    하지만 적어도 확실한 것이 하나는 있다. 그의 이 그림체는 따스해 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따스함이 가상이든 무엇이든 관계없이, 우리 자신이 풍요롭게 변하지 않는 이상 그의 그림은 따스해 지지 않을 것이다. 그는 거울을 가지고 있는 스타일리스트, 안소웅이다.



    안소웅 - motive





    illustwriter
    대남

    1998년 보르도 5대학 D.E.F.L.E
    2000년 파리 발라드 오디오 비쥬엘 상급 예술학교(ESRA-Paris Balade)
    2003년 파리 8대학 조형예술학과 Art Plastique, Universite Paris 8e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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