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을 기다리는 아이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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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임해영
  • 등록일 : 2015-06-05
  • 조회수 :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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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을 기다리는 아이 김현 1


    약간 창피한 이야기지만, 난 어릴때 빨간 보자기를 목에 두르고 나무 위에서 뛰어내린 일이 있었다. 다행히도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대신 차라리 다쳤으면 좋았다고 생각할 만큼 어른들께 엄청나게 꾸중을 들었다. 철 좀 들라고.

    이렇게 어린 아이는 개념이 없다. 닥치기 전까지는 고통도 번뇌도 모른다. 잃기 전까지는 사랑을 모르고, 저지르고 나서도 잔인함을 모른다. 완전한 공(空)의 상태. 내가 성장하면서 슈퍼맨이 하늘을 날기 위해 필요한 것은 빨간 망토가 아니라 중력을 무시할 수 있는 외계의 초능력임을 깨달았듯이, 어린 아이는 지능발달을 경험하면서 인류가 그동안 쌓아올린 모든 지혜와 지식을 하나하나 배워나간다.

    그러다 가끔 그 배운 바를 드러내곤 하는데, 이게 바로 유아미술. 즉 자신들의 분신 격인 미술작품을 통해서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

    슈퍼맨이 하늘을 날기 위해서 필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어린 아이는 지구의 중력을 무시할 수 있는 초능력이 아니라 슈퍼맨의 빨간색 망토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그렇기에 아이들은 빨간 망토를 목에 두르고 이층에서 뛰어내릴 수 있다. 지각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아서? 물론이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아이가 아직 뭘 몰라서 그런 것이다. 어린아이는 공기역학과 양력 등 익히 알려진 모든 지식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것들에 관하여 아직 개념이 없다. 그리고 두려움을 모르기에 그림도 거침없이 그려낸다.

    그만큼 그리기 쉬워보이지만 그건 애들에게나 쉬운 것. 실제로 어른이 그려보면 의외로 어려운 그림임을 납득할 수 밖에 없다. 아이들은 잘그린 그림을 보고 쉽사리 만족하지 않으며, 대충 일부러 아무렇게나 그린 그림이나 못 그려댄 척 하는 그림에 공감을 표시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건 어른들이 그린 것은 어른의 세계일 뿐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아이의 심성으로 아이들이 보는 세상을 그리지 못한다. 내려다보는 시야에서 보는 세상의 모습과, 같은 높이에서 보는 세상은 같을 수 없지 않은가. 세상은 하나가 아니며, 아이들이 보는 세상과 어른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같은 듯 해도 다를 수 밖에 없다는게 더 정확한 설명일 것이다.

    따라서 아이들이 만족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는 법은 하나 뿐.
    작가의 눈높이를 어린아이 수준으로 맞추는 길이다. 하지만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숨막히는 경쟁사회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보통 어른들이 스스로의 눈높이를 각종 사회적인 장치에 보호받는 어린 아이의 수준으로 끌어내리기 위해서는 특별한 노력이나 훈련이 필요하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일부러 아이들 사이에서나 유행할 것 같은 티셔츠를 입고 다닌다던가, 사용하는 어투를 각고의 노력 끝에 교정하여 유아처럼 변화시키는 것 같은 것들이 이러한 노력이다.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이 자신의 세계 중 일부분을 별다른 노력 없이 어린 아이의 수준으로 낮출 수 있는데, 이는 지적 장애나 퇴행과는 구별해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세계 전체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의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창문의 높이를 낮추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세계 정경을 바라볼 때 몸을 낮출 줄 아는 그들. 그들은 바로 누구나 가지고 있었을 그 시절을 탐색하는 자들로, 이른바 예술가들이라 불리운다.



    사랑하고 또 사랑해 (2009,애플비) : 김현



    작가 김현의 작품은 철저히 어린 아이를 겨냥하고 있다. 아이의 그림과 어른의 그림을 놓고, 실제 어린 아이가 그린 것을 고르라는 퀴즈를 낸다면 열 명 중 몇 명이나 정답을 맞출 수 있을 지 짐작할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김현의 작품은 유아 미술에서나 나타날 법한 몇가지 특징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어린아이의 그림에는 그 지능 연령 수준에 따라, 몇 가지 특성이 있는데 그것은 유아 미술교육 교본에서는 대개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1. 난무 : 지능연령 2-3세 수준. 아무 이유없이 무작정 그어대는 선을 말한다. 단순히 도구를 움직이니까 자국이 남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그어대는 경우가 많으며, 벽지를 망치는 주범이기도 하다.

    난무화. 착화라고도 불리우고, 난화라고도 불리운다

    2. 의인화 : 난화의 다음 단계에 해당한다. 주전자가 말을 하고, 자물쇠에 정령이 깃드는 단계. 세상 만물에 정령이 깃들어 있다는 애니미즘이 발달했던 것은 머나먼 선사시대, 인류의 지식이 최대 이 단계에 도달했을 때다. 이 과정에서 드물게나마 자신의 감정이 정령에게 투사되는 경우도 있다. 화가 난 주전자라거나, 웃는 집 같은 경우가 이에 해당할 수 있다.

    의인화는 애니미즘 시대의 선사미술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3. 열거 : 사물과 사물의 관계판단이 아직 발달하지 않은 사이 등장하는 단계. 본 것, 아는 것, 겪은 것, 관심이 있거나 신기한 것을 하나하나 그려나간다. 이 상태의 어린이는 자동차에 탄 탑승객을 그릴 때에도 자동차 따로 사람 따로 그려나간다. 그래놓고는 이게 맞다고 우긴다.



    December : 김현



    4. 투시 : 열거의 단계를 거치면, 드디어 세상 만물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지혜를 가지게 된다. 자동차 속에 있는 사람은 물론이고 심지어 감옥 안에 있는 사람도 꿰뚫어볼 수 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이미 그것은 보이는 것을 그리는 수준이 아니라, 아는 것을 그리는 수준이 되었다는 말이다. 묘사가 숙성되는 단계로, 보이는 것은 작은 디테일이라도 놓치지 않으려 든다.

    5. 특징 : 아이가 거의 모든 것을 화폭 안에 담을 수 있는 수준이 되면 그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열망에 불타오르기 마련이다. 그 안에는 세상 만물 뿐 아니라 그들의 방향과 위치, 관계 등 현재 존재하는 사물의 법칙까지 전부 담겨 있는데, 이 특징의 표현 과정에서 대상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모습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사람은 정면에서 볼 때 가장 사람답기 때문에, 정면만을 보여준다는 식이다.



    호키포키 (2009, 몬테소리) : 김현



    6. 연속 : 이 단계에 온 아이들은 이제 시간을 지배하는 법을 배운다.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가 한 장면에 표현되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놀이방에 갈 준비를 하는 자신의 모습 옆에는 어느새 버스를 타고 가는 자신의 모습이 있고, 그 옆에는 친구와 노는 자신의 모습이 있다. 그림일기는 이러한 초현실 현상을 부채질하는 좋은 교육도구이다.

    7. 자아 : 드디어 그림에 자아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보통 이것이 유아미술의 마지막 단계 중 첫 단추이며, 보통 여기서 유아들은 그림을 그리는 자신의 존재를 자각한다. 자신이 느낀 그 사람의 감정을 증폭하여 표현하는 단계로, 이 과정에서 그들은 관객(보통 부모)의 존재를 주목하여 그들에게 자신의 그림에 대한 정당성을 입증하고자 한다. 웃는 사람은 입이 찢어지도록 웃고, 우는 사람은 눈물이 바다를 이룬다.



    Angry : 김현



    8. 중요성 : 중요한 것은 크게 그리기 시작한다. 아빠보다 엄마가 좋은 아이는, 키가 크고 체격이 우람한 아빠를 손바닥만하게, 상대적으로 왜소한 체구의 엄마에게는 도화지의 절반 이상을 할애한다.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과 하루 종일 놀아주는 엄마이지 아빠가 아닌 것이라서가 그 이유인데, 대개의 아빠는 이 과정에서 인생을 회고하게 된다. 난 대체 뭐하는 사람인가...

    9. 분할 : 드디어 화면이 제 자리를 찾기 시작한다. 이제 아이의 세상에 창세기가 온 것이다. 무거운 것은 밑으로 가라앉아 땅이 되고, 가벼운 것은 위로 올라가 하늘이 되는 시기. 이 때가 되면 비로소 비행기는 하늘을 날기 시작하고, 사자는 대지를 밟고 선다. 지평선이나 수평선이 등장하면서 천지만물이 제자리를 찾는 것이 이 시기다.



    드로잉 (2010.01) : 김현



    10. 대칭 : 고대 그리스의 황금비율보다 훨씬 강력한 미의 비례가 자리하는 시기. 좌우대칭은 이들에게 진리가 된다. 통계적으로도 어린아이가 좌우대칭의 얼굴, 일반적으로 미인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그들에게 대칭이 아닌 사물은 멋있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다.

    *

    우리가 아름다움이야말로 그림을 그리는 이유라고 착각하기 쉬운 것은 바로 이 시기의 존재 때문으로, 예쁜 것이야말로 제일 중요한 것이라고 착각하기 시작한 건 사실 꽤 오래된 이야기다. 아름다움에서 해방된 천재화가 몇몇이 그것을 혁파하기 전까지, 인류는 아름다움이야말로 진리 그 자체라고 믿었다. 유아미술의 발달은 대개 여기서 끝난다.

    Extra :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수준의 아이들도 있다. 상기 열거한 열가지 단계를 모두 거친 아이들 가운데 상상력이 뛰어난 아이들은, 스스로 배워내었던 그 모든 것을 이용하여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림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세계. 바로 환상과 몽환의 세계다. 여기에선 염소가 밤하늘을 날고, 목이 늘어나 키스를 하는 것이 것이 아주 보통이다.



    탄생일 : 마크 샤갈



    이렇게 아이는 성장하면서 순수한 상태에서 벗어나, 인류가 거쳐왔던 지능의 발달사를 미술 작품으로서 하나하나 나타내며 자라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익히는 순간, 순수는 물건너 가는 것이다. 그런데 작가 김현의 그림은 이 단계 대부분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변성기도 한참 지난 어른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그가 원래 유아적인 취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가정. 또 하나는 예술가로서 뼈를 깎는 자기파악을 통하여 해당 취향의 그림을 본질 묘사의 수단이자 자기 완성의 도구로서 차용했을 거라는 점이다. 물론 어느 쪽이든 쉬운 것은 아니다.

    21세기가 어떤 세기인데 멀쩡한 어른이 순수를 지켜가며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놓아두겠는가. 현대 사회 속에서 나름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리고 그것이 반드시 필요한 직업. 예를 들어 초등학교의 교사나 유아놀이방의 지킴이가 아닌 바에야 반드시 그것을 저해하는 사회적인 압박이 가해지기 마련이다.

    제발 철 좀 들라는 어른들의 권유에서부터, 유치해서 더 이상 사귈 수 없다는 여자친구의 그 충고까지, 이렇게 모든 압박은 전방위로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당사자는 진짜 철이 들던지, 아니면 자아를 살짝 분열시켜 사회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부분. 곧 경쟁에 도태되지 않을 의지나, 좌절에 굴하지 않을 심리적 방어기제를 갖추며 스스로를 어느 정도 어른의 모습으로 꾸미고 원래 가지고 있었던 고운 세계. 곧 아이들의 세상을 마음 한 구석에 슬며시 숨겨두게 된다.

    왜? 어차피 세상은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 그것을 훔쳐볼 수 있는 창문만 낮게 뚫어두면 될 일이니까.

    *

    ★ 실제 유아 미술교육의 이론에서는 저것을 포함하면서도 반복,비약,주관,객관,대담,소극 등 여러 단계가 각 교육학자에 따라 더 추가적으로 나누어져 있다. 물론 그것이 김현 작가에게 필요한 지면을 할애할 정도로 중요한 건 아니기에, 슬며시 누락하였다.

     



    봄을 기다리는 아이 김현 2


    오스카 와일드가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집필한 동화에는 비밀스러운 정원이 등장한다. 거인은 자신의 정원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을 보고 화가 나 모두 쫓아버리고, 아이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높다란 담장을 쌓아올렸다. 지극히 어른다운 합리적인 발상으로 정원을 보호하려 들었던 거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담장으로 보호되는 정원에서는 언제나 차가운 눈보라가 몰아치는 겨울만이 지속될 뿐, 봄은 결코 돌아오지 않았다. 거인은 속이 상할 대로 상했다. 그가 보호하려던 것은 아름다운 꽃이 피는 정원이었지, 앙상한 가지에 북풍이 몰아치는 서슬퍼런 공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정원에 꽃이 피고 새가 우는 봄이 찾아왔다. 상심에 빠져있던 거인이 기쁜 나머지 정원으로 나가보니, 아이들이 몰래 들어와 놀고 있었다.

    그가 쫓아냈던 아이들이 봄을 몰고 왔던 것이다.

    이 뒤의 이야기는 굳이 더 말할 나위도 없고,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다. 왜냐하면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동화에는 모두 세 종류의 등장인물이 있는데,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단지 그 셋 뿐이다. 아이가 놀 수 있는 즉 정원과 그 정원에 봄을 몰고 오는 아이들.

    그리고 아이를 기다리는 겨울 정원의 거인.

    *

    오스카 와일드가 말하는 어린 아이란 진짜 초딩 이하의 어린아이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어울려 살아가는 정원, 즉 세상에는 얼마든지 아이들에 못지 않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은 뜬금없이 순진한 소리를 하는 우리의 친구일 수도 있고, 가끔가다 하염없이 답답한 일을 하시는 우리의 나이드신 부모님들일 수도 있다.

    이렇게 정원은 우리가 모두 모여 만들고 가꾸어 나가는 세상이다. 이미 그것을 둘러쌌던 높은 담장은 죄다 헐려 버린지 수백년이 흘러 비록 막혀있진 않지만, 어른스러운 합리성과 이성만을 기준으로 정원을 보호하려 들면 정원은 항상 겨울일 뿐이고 잘 쳐줘도 늦가을 쯤 될 것이다.



    행복이 오지 않을 땐 (1) : 김현



    따스한 어머니의 품을 연상시켜 줄 봄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차가운 마음을 가진 거인의 마음조차 아이들의 순수에 녹아내렸듯 마음이 순수한 자는 북풍한설 몰아치는 우리들의 마음을 녹일 수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아이들의 감성을 가진 자들이 필요하다. 그들만이 우리에게 봄을 배달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세상에는 봄을 가져다 줄 수 있는 특수한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는 그들을 예술가들이라 부른다.

    *

    하지만 이 예술가라는 존재들이, 자본주의 사회의 상업적 합리성과 만나게 되면 약간 요상하게 바뀌어 버리게 된다. 월트 디즈니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지만, 그의 작품 목적은 적어도 1923년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가 창설될 당시만 해도 '어린이의 꿈과 희망을 그리는 환상의 세계' 라는 문구가 썩 잘 어울리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디즈니의 사후 '전 연령을 대상으로 할 수 있는 아동용 작품만이 메이드 인 디즈니'라는 규칙이 문서화되어 범접할 수 없는 규정으로서 회사의 사칙에 삽입되면서, 그들은 봄을 몰고와야 하는 스스로의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아예 영원히 봄만 지속되는 새로운 정원을 만들기 시작했다.

    - 심지어 그들은 ESPN과 ABC, 터치스톤 픽처스까지 매입하여 성인용 작품을 생산함으로서 경영난을 타개하고 있다. 한쪽으로는 미녀와 야수, 꿈과 희망을 만들고 반대쪽은 스타쉽 트루퍼스를 만든다?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는 경우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본 일이 없다.

    디즈니 생전에야 그렇지 않았을지 몰라도, 요즘같은 시대에 자본을 마주한 예술가라면 현혹되기란 쉬운 법이다. 물론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가 그런 시대 아니던가. 우리 사회에 봄을 몰고 와야 하는 어린이들이, 용돈의 액수와 마주하면 눈빛이 달라지는 경우는 그만큼 흔한 일이고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자본과 예술의 합일점, 상업예술은 어떨까.

    특히 일러스트레이터 김현은 어느 쪽일까.
    그는 순수하게 자라나, 비밀스러운 화원을 찾아다니는 어린아이일까, 아니면 아이의 세계를 이해하고 가꾸려 노력하는 거인일까. 그도 아니라면 디즈니 컴퍼니의 스티브 잡스처럼 가습기와 온도조절기를 써서 아예 정원을 통째로 리모델링하는 자인가.

    모든 것이 좋을 때는 이것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 예를 들어 절박한 경우라면 그것을 알아보는 것이 비교적 쉬운 일이다. 자. 별로 행복하지 못한 경우의 김현을 보자.



    행복이 오지 않을 땐 (2) : 김현



    김현의 개인작업을 보면, 봉제곰이 상당히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도 어딘가에 묻어 슬쩍 얼굴을 내미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유일한 존재로서 생명을 가지고 화면을 지배하는 주인공으로서 등장한다.

    누군가의 초상이 아닌 이상에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화면을 지배하는 주인공으로서 자신을 그리거나 자신을 나타내는 사물을 대입하곤 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이렇게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이 곰돌이의 정체는 별로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이것이 어딘가의 주문을 받아 그린, 즉 광고주의 커트라인에 구애받아가며 그린 결과물이 아니라 순전히 개인적으로 작업한 것이라는 사실은 이 곰돌이의 존재를 작가의 대리적 존재. 즉 작품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작가의 모습임을 의심할 수 없다.

    그가 만약 머리 끝까지 유아적인 발상 속에서만 살아가는 존재라면, 이 그림에도 역시 마크 샤갈을 넘나드는 환상의 세계가 구현되어 있는 것이 옳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그의 그림은 무분별한 연속적 나열이나 사차원적인 세계 대신 적당한 수준의 묘사가 드러나 있을 것이다. 작품은 그가 후자의 경우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림에는 지평선의 구도가 등장했다. 지평선이나 수평선의 묘사는 어린아이가 창세의 단계를 거쳐 제일 먼저 익히는 구도로, 올라가 하늘이 되어라. 내려가 대지가 되리라-식으로 이어지는 '태초의 말씀'처럼 신조차 따를 수 밖에 없었던 세상의 섭리다.

    이 지평선의 묘사는 단순히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시사하는 바가 결코 적지 않은 구도로, 화면을 반으로 갈라 하늘과 대지, 혹은 바다를 묘사함으로서 얻는 이 구도는 우리에게 그만큼 익숙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편안함을 줄 수 있는 구도이다. 그리고 이 편안함을 다른 말로 바꾸면 부동, 즉 움직이지 않는 것이 된다.

    지평선 너머가 궁금하던 시절은 이미 까마득한 옛날에 지났기 때문에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만으로도 많은 것을 알기 족하다. 이렇게 김현의 작품에서는 화면을 반으로 가른 수평적이고도 안정적인 구도가 사용된다. 그렇다면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는 김현, 곰돌이는 왜 나팔을 불고 있을까. 의문을 풀기 전에 다른 작품도 살펴보자.



    행복이 오지 않을때 (3) : 김현



    지평선이 수평선으로 그럴싸하게 바뀌어 있지만, 기본 구도는 별다를 것이 없다. 잘 찾아보면 집 옆에 무언가 굴뚝같은 것이 있는데, 눈여겨 보면 그게 등대임을 알 수 있다. 등대란 움직이는 법이 없는 사물. 무언가를 기다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야만 하는 것이 등대의 존재 목적이다.

    가로 누운 구도로 안정감을 추구하고, 거기에 더해 움직이지 않으려 드는 김현의 마인드는 사실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자유로운 아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렇다면 그는 누구일까. 행복이 오지 않을때 자신의 정원을 아이들이 와서 놀기 좋을 곳으로 꾸며놓고 기다리며, 기다리기 지루해 질 때마다 조그만 트럼펫을 불어 자신과 정원의 존재를 알려주거나 등대를 켜는 자.

    그는 누가 봄을 가져다 주는지 알고 있는자, 얼음정원의 거인이다.

    *

    어쩌면 예술가라고 해서 반드시 정원을 찾아다니는 자, 아이라고는 할 수 없다. 어쩌면 아이가 놀기 좋도록 모든 것을 꾸며놓고, 거기에 더해 혹시 찾아올 때 헤메지 말라고 나팔까지 불어주는 자. 곧 거인이 더 어울릴 지도 모르는 거 아닌가.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되는 법. 다듬지 않은 정원이라면 봄이 와도 파리만 꼬일 뿐이니 거인이나 정원사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며, 또한 모두를 위해 무언가를 꾸며내어야 한다는 목적성에 비추어 볼 때 가장 예술가라는 호칭에 어울리는 존재들이다.

    이렇게 김현은 현재 이렇게 정원 다듬기를 모두 마쳐놓은 상태에서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눈보라 속의 거인은 외로운 존재일 뿐이고 봄이 오지 않은 정원은 언제나 영원한 겨울일 수 밖에 없지만 혹시 그의 정원에 봄이 오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설마 아이가 들어올 수 없도록 담장을 쳐두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너무 외진 곳에 자리잡아서? 초조해 진 거인은 오만가지 번뇌 속에서 안달할 것이 뻔하다.

    글쎄. 어떨까. 허탈한 말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말이다, 김현의 정원에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이유은 순전히 정원 광고가 시원찮아서 그런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곰돌이의 저 트럼펫은 정원의 규모에 비해 너무 출력이 작았으니까.



    행복이 오지 않을 땐(5) : 김현



     


     

    illustwriter
    대남

    1998년 보르도 5대학 D.E.F.L.E
    2000년 파리 발라드 오디오 비쥬엘 상급 예술학교(ESRA-Paris Balade)
    2003년 파리 8대학 조형예술학과 Art Plastique, Universite Paris 8e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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